기 위한 토대가 된다. 그렇다면 내가 지난해를 살아오면서 얻은 것은 무
엇이고 잃은 것은 무엇일까.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나의 처지가 차라리
다행스럽기는 하지만 얻은 것은 한 가지, 내가 지난 한 해를 그리 보람있
게 살지 못했다는 깨달음이다. 이 깨달음을 얻기까지 철나서 10여년을 흘
려보냈다는 생각을 했을 정도였다.
살아가는 일이 그리 만만치 않다는 것을 깨닫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힘이
들고 시간이 많이 필요한데 정작 그것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또 얼마나 많
은 노력이 필요할까. 그러나 나는 기쁘다. 내가 비록 지금까지 그리 잘
살아오지 못했음을 스스로 부끄럽게 여겨도 앞으로 내가 무엇을 해야 하
며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해가 가기전에 깨닫고 이렇게 글로 쓸 수 있
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지난해는 그리 큰 일도 없었고 나쁜 일도 없었던 덤덤한 한 해였다. 작
은 기쁨도 있었고 속상하는 일도 있었겠지만 그런 것들이 찌꺼기로 남거
나 마음에 상처로 남은 것이 없는 걸 보면 한 해를 무사히 보냈다는 생각
이다. 나날이 살아간다는 것은, 그리고 무사히 살아간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세상은 스스로의 일상을 지켜나가는 것조차 어렵게 한다.
다만 혼자 살아갈 수는 없는 세상에서 더불어 함께 살아가야 할 이웃들과
의 관계와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 그리고 내가 살아가는 이 땅과 민중의
역사에 대해서도 관심을 버릴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면 나는 냉소적인 사
람이 되어서는 안된다.
무엇보다 일에 대한 체계적인 정리가 나의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일을
체계적으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준 것은 움베르토 에코였다. 어떻게
책 한권([논문,어떻게 쓸 것인가])에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만은
책 한 권이 인간의 삶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은 전혀 과장이 아니다. 이제
일을 어떻게 할 것이며 무엇을 할 것인가는 정리가 됐다. 어느정도 자신
감도 있다. 이제 내가 성실하게 일을 밀고 나가는 일만 남았다.
움베르토 에코의 책을 읽고 나는 지난 10년 동안의 독서가 잘못되었음을
알았다. 물론 독서를 한 것은 나의 내면에 남아있다. 그러나 그것을 나의
재산으로 자료로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 서른이 막 넘은 이제 나는 그것을 깨달은 것이다. 학문을 하는 사람
들이 어떻게 다른가를 나는 배우지 못했다. 모든 문제를 나 혼자 해결해
야 했고 내 방식대로 해결했다. 그러다 보니 많은 실수와 어리석음과 노
력을 낭비하는 결과가 있었다. 학문의 방법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러나 적어도 체계적인 공부를 했더라면 어떠했을까.
어떤 일을 기획하고 대강의 줄기를 잡고 자료를 조사하여 분석하고 원고
를 쓰는 일이 이제는 가능하게 되었다. 물론 전에도 이런 것을 몰랐던 것
은 아니다. 그러나 이것도 시간이 필요했을까. 내가 지난 10년을 흘려버
린 것은 지금의 내가 있기 위한 밑거름이 아닌가. 그렇다고 생각하면 아
무 것도 걱정할 것이 없다. 나는 깨달았고 앞으로는 잘 할 수 있는 용기
도 있다.
새해에는 인관관계를 깔끔하게 정리하자. 지금까지도 잘 하고는 있지만
사람을 만나는 것은 양이 아니라 질의 문제이다. 좋은 친구들,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 일관계로 만나는 사람들, 그리고 이렇게 저렇게 알게 되는
사람들, 많은 사람들이 있다. 사람의 수는 적게, 그러나 만남은 깊이 있
게 사귀자는 나의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면 내가 만
나왔던 그 많은 사람들이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연락이 되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 만난 사람은 많고 정이 들어서 보고 싶은 사람도 많건
만 인연을 맺으려는 나의 노력은 너무 허술하지 않았는가. 지금까지 살아
오면서 나의 삶에 도움을 많이 준 형들과 벗들을 잊을 수 없다. 사람은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당연하다고는 해도 인연들이 중간에서 끊어지는 것
은 삶의 단절을 의미하지는 않는지.....앞으로는 사람과의 만남을 보다
소중하게 생각하고 오래 지속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공부를 계속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가야 한다. 할 일이 많기는 하지만
진학을 할 수 있는 학과공부를 소홀히해서는 안된다. 살아가는 보람은 내
삶의 성취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체계적인 독서와 하나의 큰
줄기를 잡아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을 위한 공부가 되지는 않겠지만
내가 할 일 가운데 중요한 부분이 학습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공자의 말
씀은 내게 언제나 힘이 된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니 그 아니 기쁠소냐'
많은 일을 가지고 힘에 겨워 허덕거리는 것은 능력이 없는 것과 같다.
자신에게 맞는 만큼의 일을 찾아서 성취감을 느끼는 것도 중요하다. 나는
그동안 욕심을 너무 부렸는지도 모른다. 능력은 없는데 스스로의 한계를
모르고 일에만 욕심을 부리는 것은 스스로를 망치는 것과 같다. 이제 일
을 많이 하겠다는 생각은 말자. 다만, 꼭 하고싶은 일이나 해야할 일을
찾아서 꼭 하고마는 끝마무리를 잘해보자.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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