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여름휴가

 

지난해에는 미국에 다녀오느라 따로 휴가를 대신했고, 올해 처음으로 여름휴가를 다녀왔다. 직장에 다니면서 처음 다녀온 여름휴가라 더욱 뜻깊은 시간이었다. 여름휴가는 4일이었지만 앞뒤의 토요일과 일요일을 모두 쉬어서 모두 9일 동안 휴가를 즐길 수 있었다.

휴가 때, 마땅히 어디로 다녀와야 할지 고민을 했지만, 똥이 엄마의 직장과 관련하여 추천할만한 곳이 있다고 해서 일정은 갈등없이 결정을 했다.

 

8월 12일 토요일

휴가 첫 날, 미리 준비해 놓은 짐을 자동차에 싣고 아침 9시 30분에 출발했다. 목적지는 경북 울진에 있는 자수정 광산. 울진은 초행이어서 기대가 컸다. 뜨거운 태양과 폭염으로 도시에서는 숨쉬기도 힘들 정도였다.

고속도로를 따라 원주 인터체인지까지 가서 다시 제천 쪽으로 내려갔다. 영주, 봉화를 거쳐 울진까지 내려가는 길은 처음가는 길이었지만 더없이 좋았다. 고속도로보다는 국도로 내려가는 길이 더 많아서 가는 시간은 더뎠다.

국도를 따라 내려가는 길에서 가깝고 멀게 보이는 산들이 짙푸르게 숲을 이루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그나마 희망이 남아 있다는 생각을 했다. 환경 문제가 가장 심각하기는 하지만, 더 이상 훼손하지 않고 보전을 한다면 훨씬 좋아질 것 같다.

우리가 가는 목적지는 울진 근처에 있는 광산이었다. 울진에 있는 불영 계곡 못미쳐 국도에서 비포장도로를 따라 30분을 더 달려가자 광산이 나타났다. 계곡을 따라 비포장도로를 따라 가면서 작은 마을과 초등학교 분교가 나타났다. 이렇게 외진 곳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계곡에는 사람들이 차를 가지고 와서 텐트를 치고 휴가를 보내고 있었다. 계곡 물은 맑고 깨끗했고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자수정 광산은 우리나라에 이곳 한 곳 밖에는 없다고 한다.

무려 9시간 가까이 걸려 자수정 광산에 도착했다. 광산 측에서 내준 숙소에 짐을 풀고 저녁을 해 먹자 밤이 되었다. 깊은 산속이어서 불빛도, 소음도 없었고 무엇보다 기온이 낮았다. 모처럼 달과 별을 바라보며 조용한 시간을 가졌다.

 

8월 13일 일요일

아침을 지어 먹고 자수정 광산에서 하는 자수정 줍기 행사에 참여했다. 올해가 두 번째라고 하는데, 자수정 광산을 따라 올라가는 계곡에 자수정을 뿌려놓고 그것을 줍는 행사였다. 계곡은 좁았지만 물이 시원하게 내려와서 더위를 느낄 수 없었다. 똥이는 계곡에서 내내 걸어다니며 계곡물을 따라 걸어 올랐다.

자수정을 주우며 계곡을 따라 더디게 올라갔다가 자수정 광산 안에 들어가서 광맥을 보고 나왔다. 내려오면서 주운 자수정을 가공해 목걸이와 귀걸이를 만들고 미리 만들어놓은 자수정을 몇 개 사서 목걸이를 만들었다.

점심은 아침에 먹고 남은 밥을 대충 먹고 짐을 싸들고 나왔다. 광산에서 소개해준 곳은 덕구온천 아래에 있는 모텔이었다. 모텔을 찾아가기 전에 불영계곡에 있는 불영사에 먼저 들렀다. 불영사는 그리 큰 절은 아니지만 의상대사가 건립한 절이어서 천년이 넘은 고찰이다.

불영사까지 걸어 들어가는 길이 그리 멀지는 않았지만 똥이가 걷지 않고 계속 안기겠다고 하는 바람에 똥이를 안고 가는 길이 멀게 느껴졌다. 날씨는 매우 더워서 말그대로 폭염이었다.

똥이는 엄마와 함께 대웅전에서 부처님에게 절을 했다. 똥이는 부처님에게 절을 잘 한다. 절하는 모습이 앙증맞고 귀엽다.

불영사에서 나와 불영계곡을 따라 내려오다가 길옆에서 울진 특산물인 조롱수박을 샀다. 조롱수박은 껍질을 깎아먹는 수박으로, 크기는 작지만 아주 달고 맛있는 수박이다.

모텔에 짐을 내려놓고 바닷가로 나가려다가 너무 늦어서 다시 돌아왔다. 날씨가 너무 더웠다.

 

8월 14일 월요일

느즈막히 일어나 불영계곡으로 갔다. 불영계곡 입구에서 아침 겸 점심을 지어 먹고 불영계곡으로 내려갔다. 계곡은 맑고 깨끗한 물이 흐르고 있었다. 사람들이 있었지만 혼잡하거나 지저분하지는 않았고 계곡을 막은 물에는 어린이들과 어른들이 함께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우리는 텐트가 없었지만 깔판만 깔아놓고 물놀이를 했다.

똥이 엄마는 수영복을 갈아 입고 오고, 똥이를 위해 튜브를 비싸게 샀다. 똥이를 튜브에 태우고 물 속에 내려놓자 예상 외로 똥이는 무척 좋아했다. 물도 맑고 그렇게 차갑지도 않아서 물놀이하기에는 아주 좋은 환경이었다.

똥이는 물속에서 나오지 않고 4시간 가량이나 물놀이를 했다. 모텔로 돌아오는 길에 물놀이할 때 사귀었던 형들과 헤어지기 싫어서 내내 서럽게 울었다.

모텔에서 라면을 먹고 저녁에는 덕구 온천에 올라가 관광호텔에서 맥주와 바비큐를 먹었다. 날씨는 여전히 엄청나게 더웠다.

 

8월 15일 화요일

아침에 모텔을 나와 부산으로 향했다. 중간에 성류굴에 들러 성류굴 내부를 구경했다. 성류굴은 신비롭고 아름다웠다.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 곳이어서 입구부터 나올 때까지 사람들이 계속 줄을 서야만 했다.

날씨는 여전히 찌는 듯이 더웠다. 울진에서 부산까지 해안을 따라 내려가는 국도를 달렸다. 마침 국경일이어서 창용님이 드라이브 삼아 우리 쪽으로 올라온다고 했다. 영덕을 지나 포항 못미친 휴게소 겸 해수욕장에서 만나 차를 한 잔하고 부산에 오는 길에 보경사에 들렀다. 보경사는 포항 근처에 있는 절인데, 이름은 처음 들어 보았다. 보경사 주차장에서 절까지 똥이를 안고 가는 길이 무척 멀게만 느껴졌다. 날씨는 매우 더워서 땀이 비오듯 했다.

보경사에서 창용님이 가진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다. 매우 고급스러운 카메라였는데, 작품을 찍느라 장만했다고 한다. 보경사에서 나와 다시 차를 달려 부산 송정으로 갔다.

저녁으로 회를 먹고 창용님 댁에서 맥주를 한 잔하며 그동안 못나눈 이야기를 나누느라 새벽이 되도록 시간가는 줄 몰랐다.

 

8월 16일 수요일

비가 내렸다. 아침을 먹고 창용님이 간절곳으로 가자고 했다. 간절곳은 울산에 속해있는데, 동해안에서 해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이라고 한다. 간절곳까지 비를 뚫고 갔다. 그곳은 그저 작은 공원이 있을 뿐이었다. 바다는 수평선만 보였다. 수평선 위에 떠있는 커다란 유조선과 화물선들이 가끔 보이기도 했다.

간절곳에서 오는 길에 해운대에 있는 피자헛에 들러 피자를 먹었다. 똥이와 명진(창용님 아들)이가 말썽을 부리는 바람에 어디로 먹는 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다시 창용님 댁으로 와서 짐을 가지고 선희 씨 댁으로 갔다. 태종대에 있는 선희 씨 집을 찾아가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저녁에 도착해 곧바로 저녁 식사를 하고 저녁 늦게 도착한 송중령과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8월 17일 목요일

아침에 부대에 들어가 부대장실과 부대 구경을 했다. 똥이는 처음으로 실제 권총을 만져보고 좋아했다. 날씨는 다시 폭염이었다. 부대에서 나와 부산해양대로 들어가 해양대 뒤쪽에 있는 해안에서 바다구경을 하고 그곳에서 물질을 하던 해녀 할머니에게 자연산 홍합과 소라를 사와서 삶아먹었다.

점심을 먹고 떠날 차비를 했다. 부산을 떠나 대구로 가는 길에 경주에 먼저 들렀다. 경주에서 유명한 황남빵을 사먹고 불국사로 가서 불국사 구경을 했다. 부산을 떠나면서 날씨도 흐려져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불국사에서 비를 맞으며 절구경을 했고, 똥이는 엄마와 부처님에게 절을 했다.

불국사를 보고 다시 대구로 향했다. 대구에는 똥이 엄마의 친구 은옥 씨가 살고 있는데, 저녁에 도착해 저녁을 먹고 나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대구에는 비가 오지 않았고 날씨는 말할 수 없이 더웠다. 숨이 턱턱 막히는 것 같았고 몸에 무리가 오기 시작했다.

 

8월 18일 금요일

아침을 먹고 곧 대구를 출발했다. 고속도로 중간 중간 폭우가 쏟아지고는 했다. 중간에 천안에 들러 학화호도과자를 산 다음, 서해안 고속도로를 따라 집에 왔다. 긴 여행의 끝이었다.

세 식구가 건강하게 여행을 마칠 수 있어서 퍽 다행이었다. 결코 짧지 않은 여행이었다.

 

여행을 하면서 가장 마음이 아팠던 것은, 아직도 민중의 다수는 가난과 소외된 환경에서 어렵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국도의 길가에서 수박이나 복숭아를 팔고 있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노인들이었고 바다에서 물질을 하던 해녀 할머니도 뜨거운 태양 아래를 망태를 메고 오래 걸어야 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내 마음은 저려왔다. 결코 외면할 수 없는 그들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과연 국가는 국민의 삶을 얼마나 책임질 수 있을까. 국가는 국민에게 세금을 받아서 정작 필요한 곳에는 사용하지 않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구조는 분명 잘못된 것이고 특권을 누리고 있는 소수들만이 국민이 낸 세금으로 혜택을 받을 뿐, 정작 가난하고 소외된 민중들은 국가가 부담해야 하는 복지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