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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29 22:22

[꽁뜨] 운전은 인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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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을 하려고 문을 열고 나오자 문 앞을 가로막고 서 있는 커다란 물체가 있었다. 어제 밤까지만 해도 길 앞은 텅 비어 있었는데, 느닷없이 나타난 고철 덩어리가 출근 기분을 엉망으로 망쳐 놓았던 것이다.
누가 버린 고철인지 잘 살펴보니 고철은 아니었다. 시커멓게 생기기는 했지만, 아직 임시 번호판을 달고 있는 것으로 보아 어제 새 차를 구입해서 세워놓은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지만, 하필이면 내 집 문 앞에 세워놓을게 뭐란 말인가. 나는 기분이 좀 나빠서 타이어를 발로 툭 찼다. 그때였다.
“이봐요, 아가씨. 왜 죄 없는 남의 애마를 못살게 구는 거요?”
어디선가 뚝배기 깨지는 것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보니 맞은 편 빌라에 살고 있는 늙수그레한 사내였다. 아마도 이혼남이나 홀아비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가끔 마주치면 눈인사가 가볍게 하는 정도였다. 그런 사내가 어제 새로 차를 산 것이 틀림없었다.
“차를 남의 집 앞에 세워놓으면 어떡해요?”
나도 지지 않고 맵싸게 한마디 쏘아부쳤다. 이럴 때 꿀리면 사내들이란 언제나 여자를 우습게 본다니까.
“남의 집이라니, 여긴 우리 집 앞이란 말이오. 댁의 집 앞이라고 정해놓은 곳이 있답디까?”
사내는 느물거리듯 천천히 말했다. 얼굴은 반반하게 생겼지만 경우가 없기는, 한심한 이기주의자 같으니라구.
하긴, 우리 집 골목은 막다른 골목인데다 빌라가 마주 보고 있어서 차를 어떻게 세워놓아도 양쪽의 문 앞에 주차를 하게 되어 있었다.
“흥, 차 있다고 유세를 하시나보죠?”
서른이 넘은 노처녀의 성깔을 아직도 모르시나본데, 나도 결코 만만하고 호락호락한 여자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줘야지.
“그런 아가씨는 면허증이라도 있수?”
내가 톡 쏘는 말에도 아랑곳 않고 그 사내는 약올리듯 물었다.
“왜요? 면허증 없으면 아저씨 면허증을 빌려주시려구요?”
내 약점을 꼬집는데는 나도 더 참을 수가 없었다.
“아직 그 나이에 운전면허증도 없단 말이오? 거참.”
사내는 혀를 끌끌 차더니, 나를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정말, 아침부터 기분이 엉망으로 구겨지고 말았다. 가뜩이나 운전면허증이 없는 것도 서러운데다 운전면허를 따기 위해 학원에 갖다 바친 돈만 해도 벌써 200만원이 넘어가고 있으니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기계치가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기 시험에서만 5번을 떨어지고 겨우 6번째에 붙었다. 그것도 겨우 턱걸이로 2종 보통에 필요한 72점을 따느라 그 고생을 한 것이다.
그 다음부터는 설상가상, 첩첩산중이었다. 코스 시험에서 떨어진 것만도 15번. 16번째에 겨우 코스 시험에 통과를 했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 주행 시험이 남은 것이다. 주행 시험도 벌써 8번이나 떨어졌다. 그러니 내 자존심이 상해도 뭐라 할 말이 없을 수밖에.
“남이야, 운전면허가 있던 없던, 아저씨가 무슨 참견이에요?”
나는 신경질을 참을 수가 없어서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그런데도 그 사내는 느물느물 웃으며 속 좋은 사람처럼 대답했다.
“그러지 말고 출근하시는 길에 제 차를 타고 가시죠. 저 아래 전철 타는 곳까지라도 태워드릴테니까...이웃 좋다는 게 뭡니까.”
나는 기가 막혔다. 병 주고 약 준다는 말이 바로 이런 경우가 아니고 뭐란 말인가.
나는 흥, 하고 콧방귀를 뀌며 골목길을 걸어 내려갔다. 보나마나 새 차를 산 이유가 여자들이나 꼬시려는데 목적을 두고 있는 것 같았다. 여자만 보면 ‘야, 타!’하는 야타족이 바로 저런 인간들인지도 몰라.
골목길을 다 빠져나오기도 전에 고철 덩어리같은 차가 뒤에 쫓아와서는 창문이 스르르 열리더니 예의 그 사내가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언제든지 차가 필요하시면 말씀만 하세요. 그럼...”
차가 필요하면 말씀만 하라구? 나를 차에 환장을 한 사람으로 취급하는군. 나는 저런 못난이들이 꼴보기 싫어서라도 빨리 운전면허를 따서 차를 몰고 다녀야겠다고 생각했다.
직장에 출근해서 바쁜 시간을 얼추 보내고 잠시 한가한 시간이 되었을 때, 나는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을 다시 생각해 보았다.
아침에는 그 사내의 말에 자존심이 상해서 신경질을 부리긴 했지만, 냉정하게 생각한다면 차를 얻어 타는 것이 그리 큰 잘못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공짜로 탈 것도 아니고, 매달 차비에 해당하는 비용을 지불하면 될 것이다.
하지만, 오늘 아침에 그렇게 신경질을 박박 부리고 나서 차를 태워달라고 말하기는 너무 쑥쓰러웠다. 좋은 방법이 없을까. 가장 좋은 방법은 빨리 운전면허를 따서 직접 차를 몰고 다니는 것이지만, 그게 그렇게 쉽지 않을 걸 어쩌랴.

“여의도까지 가시죠? 저는 마포까지 가니까, 함께 타고 갑시다. 마포에서 버스로 갈아타면 훨씬 빠르죠?”
벌써 며칠 째 출근길에 얼굴이 마주치면 그 사내는 나보고 차를 타라고 종용하곤 했다. 어디서 알았는지 내 직장이 있는 곳까지 알아가지곤 노골적으로 추파를 던지는 것이다. 아마도 우리 집주인 아주머니를 꼬드겨서 내 직장을 알아냈을 것이다.
“좋아요, 그렇게 애원하니까 한번 타드리죠.”
나는 절대로 나의 자존심을 굽히지 않고 콧대를 세우며 사내의 청을 받아드렸다. 사내는 내가 차에 오르자 기분이 좋아졌는지 클래식이 나오는 라디오를 틀어놓고 분위기를 살렸다.
골목에서 빠져나간 차는 어느 집 앞에 잠시 멈추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잠깐 다녀오겠습니다.”
사내는 차에서 내려 집으로 들어가더니 곧 어떤 여학생을 부축하고 나왔다. 여학생은 다리에 깁스를 하고 있어서 걷기가 불편했다.
차는 마포가 가까운 곳에 있는 학교 앞에서 여학생을 내려주었다. 여학생이나 그 사내나  이렇게 통학을 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좀 의아하시죠? 저 여학생을 태워줘서...”
여학생이 내리고 나서 그 사내가 물었다.
“아니요, 같은 동네에 사니까, 아는 학생이라면 당연히 태워주시겠죠?”
내 말에 사내는 빙긋이 웃었다.
“사실은, 이 차를 산 이유가 바로 저 여학생 때문이었습니다.”
“왜요?”
“전에 가지고 다니던 차로 저 여학생을 치었거든요. 그 사고가 나기 전까지는 이 동네에 살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새 차인데도 초보운전이 안 붙어 있었군요...”
“생전 처음 교통사고를, 그것도 사람을 다치게 하는 사고를 내고 나서 한동안 운전을 못 하겠더라구요. 내가 누구를 다치게 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 했거든요. 사고를 내고 나서 우선 보험으로 처리를 했는데, 차는 팔아버렸습니다. 께름직해서 말이지요.”
“그럼, 일부러 이 동네로 이사온 까닭은 뭐예요?”
“아마도, 수경 씨를 만나려고 그랬던가 봅니다. 하하하...”
차를 탄 첫 날, 통성명을 했기 때문에 그는 나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남수였다. 그는 농담처럼 그렇게 말했다.
“사실은, 내가 보상금을 주고 합의를 했지만, 그게 다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이 동네로 이사를 와서 차를 새로 마련했지요. 그 여학생이 다리가 불편하니까, 다리가 다 낳을 때까지는 통학을 시켜줄 생각으로요.”
나는 그때 그 사내, 남수 씨를 다시 쳐다보았다. 늙수그레한 이혼남도, 홀아비도 아닌, 잘 생긴 남자가 거기 앉아 있었던 것이다.
사실, 그동안 나도 그 남수 씨에 대해 얻어들은 이야기들이 많았다. 주로 집주인 아주머니가 제공하는 정보였는데, 마포에 있는 대기업에 다니고 있고, 나이가 들긴 했지만 총각이라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성실하고 성격 좋고 돈 잘 벌고 인물도 훤한데,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아서 그런지 신부감이 잘 나타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은근히 내게 생각이 어떠냐고 슬쩍 물어보곤 했다. 나는 관심 없는 척 했지만 그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기는 했다.
처음에는 출근하는 시간에만 차를 함께 탔지만 시간이 좀 지나면서 퇴근 시간에 그가 먼저 사무실로 전화를 했다.
“퇴근 시간에 수경 씨 사무실 앞에서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오늘 약속 있으십니까?”
어찌 매일 약속이 있으랴. 직장 동료들 눈치가 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편하게 집으로 갈 수 있으니 그만한 이목쯤이야 무시하기로 했다.
그런던 사이에, 8전 9기의 주행시험이 다가왔다.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회사에 휴가 신청을 하고 주행시험장에 가서 시험을 보았다. 내가 주행시험을 본다고 말하자, 남수 씨는 자기가 차로 모셔다 드리겠노라고 했지만, 나는 너무 부담스러워서 오히려 시험을 망칠 수가 있으니 그만두라고 했다.
주행시험은 오후에 있었다. 나는 일찍 면허시험장에 도착해 접수를 마치고 내 차례가 오기만을 초조하게 기다렸다. 철망 너머로 주행시험을 치르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하나같이 초조하고 안타까운 얼굴들이었다.
열 명이 시험을 치르면 두 세 명 정도가 합격했다. 확률은 고작 20, 30퍼센트에 불과했다. 합격한 사람들은 함박 웃음을 지으며 자신감이 어린 표정으로 사람들 사이를 당당하게 걸어 나오고, 떨어진 사람들은 뛰어서 시험장을 나왔다.
차에 앉아서 출발 신호가 떨어져도 차를 움직이지 못해 불합격하는 사람도 있고 코스를 잘 돌고 합격선에 들어와서 정지 신호를 못 지키고 코스를 이탈해 따놓은 합격을 놓치는 어처구니 없는 사람도 있었다.
내 가슴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세차게 뛰었다. 아마 내 앞에 백마를 탄 왕자가 나타났다고 해도 그렇게 가슴이 뛰지는 않았을 게다.
나는 마음 속으로, 침착하자, 침착하자를 계속 되뇌이며 순서를 기다렸다. 마침내, 내 번호가 불려지고 나는 자동차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다리가 후들거리면서 자신감이 없었다. 겨우 운전석에 앉은 다음, 안전띠를 매고 클러치와 브레이크를 밟았다.
통제관이 ‘출발’을 알리고 나서 기어를 2단에 놓고 클러치를 살짝 떼면서 엑셀러레이터를 살짝 밟았다. 먼저, 언덕에서 멈추는 단계가 나타났고 나는 시동을 한번 꺼뜨렸다. 얼른 시동을 다시 켜고 내려가서 급제동하는 곳에 도착해 학원에서 배운대로 힘껏 브레이크를 밟았다.
그리고 요철 지점, 신호등을 모두 지나 무사히 출발선까지 돌아왔다. 내가 들어온 저 앞쪽에서 파란 신호등이 들어왔다. 그리고 통제관이 ‘김수경 씨, 합격입니다.“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믿을 수가 없었다. 내가 합격을 했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았다. 그동안 그렇게 많은 고생을 하고 낙방을 한 것도 바로 이 시간을 위해 계획된 것만 같았다.
엄청난 일을 해냈다는 뿌듯함으로 면허시험장을 나서자 어디선가 불쑥 꽃다발이 내 눈앞에 들이닥쳤다. 나는 깜짝 놀라 그 꽃을 내민 사람을 쳐다보았다. 남수 씨였다.
“축하합니다.”
나는 어안이 벙벙해서 남수 씨와 꽃을 번갈아 쳐다보며 할 말을 잊었다.
“저기에서 걸어나오는 표정이 합격했다는 것을 알려주더군요. 하지만 불합격을 했더라도 꽃다발은 드렸습니다. 힘내라는 뜻으로요. 하지만 합격을 했으니 더 잘 된 일이죠.”
남수 씨가 이렇게 기다려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누군가가 기다려준다는 것이 이렇게 기분 좋은 일이라는 것을 오늘 처음 깨달았던 것이다.
“자, 오늘은 기쁜 날이니, 제가 한턱 사겠습니다. 어디로 모실까요?”
그렇게 우리의 사랑은 시작되었다.

남수 씨가 타고 다니던 차의 뒷유리에는 [초보운전]이라는 딱지가 붙었다. 그리고 우리는 아침마다 함께 출근을 한다. 초보라는 서러움을 한 몸에 받으며 남수 씨, 아니, 남편의 지청구를 달게 들으며 운전 연수를 하고 다니게 된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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